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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생 이강우, 우동 장인을 만나다”
2001년 일본 큐슈 오이타현 일본문리대학으로 유학을 떠난 이강우 사장.
그 시절 모든 유학생이 그렇듯 아르바이트로 생활비와 학비를 조달해야 했습니다.
그를 좋게 본 집주인이 큐슈에서 줄서는 우동집을 소개해 줬고,
“어떤 일이 주어지든 목숨 걸고 열심히 하겠다”는 굳은 의지에 합격이라는 결과가 주어졌습니다.
“겐로쿠우동”은 오이타현에서만 30년 이상 운영된 3대째 내려오는 유명 우동집으로,
오전 10시를 조금 넘어서면서부터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기 시작하는 곳입니다.
오후 2시 무렵이 되어야 빈자리가 한 두 곳 정도 생기고,평일에는 하루에 200명,
주말에는 300명 이상의 손님이 방문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그 맛을 인정받은 곳입니다.
큐슈의 명물 지도리, 겐로쿠우동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
“한국인의 끈기와 우직함, 인생의 방향을 바꾸다”
일터에서 외국인을 대하는 현지인들의 텃새는 생각하는 것보다 정도가 심했습니다.
그러나 이강우 사장은 한국인 특유의 끈기와 우직함, 맛있는 우동을 항상 먹을 수 있다는
긍적적인 마음으로 시련을 극복해나갔습니다.
워낙 바쁜 음식점이다보니 아르바이트생 수는 18명에 달했습니다.
대부분 3~6개월을 못버티고 그만두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나 이강우 사장은 달랐습니다.
설거지 6개월 조리 준비 6개월, 면 만들기 6개월 등 3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고, 비법은 자연스럽게 그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렇게 맛있는 우동을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3년 동안 그를 지켜봐온 우동장인은 그의 뜻을 높이 평가했고, 아무에게도 알려주지 않는
마지막 비법까지 그에게 공개했습니다. -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골목길 반지하 점포, 홍대 명소가 되다”
2010년 8월, 이강우 사장은 큐슈 겐로쿠우동의 정신과 맛을 그대로 이어받아 홍대 후문 이면도로
골목길 지도를 들고 찾아와도 단번에 찾기 어려운 곳에 겐로쿠우동 1호점을 오픈했습니다.
매장 규모는 10여 평, 1층도 아닌 반지하 점포에 테이블은 3개에 불과했지만 맛이 있다면 점포가
어디에 있건 손님이 찾아올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지고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단, 내부 인테리어와 외부 익스테리어는 일본 정통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도록 목(木)
구조와 기와 형태를 적용, 세련되면서 깔끔한 공간을 연출해 고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그 흔한 전단지 홍보조차 실시하지 않았지만 개업 2~3주 후, 식사 시간이 되자 손님들이 가게
밖으로 줄을 길게 늘어서기 시작했습니다. 일평균 방문객 수도 100여 명을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손님이 많을 때는 일매출 300만 원을 훌쩍 넘어서고 있습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점포
겐로쿠우동은 이제 명실상부 홍대의 명소로 자리를 잡았습니다.